국내여행/당일치기

가을의 끝에서 "용산워킹투어 - 일제흔적의 길"(녹사평역~경리단길~해방촌~남산공원)

물결이 2020. 11. 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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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공원 시민참여프로그램 '용산기지 주변지역 워킹투어' 참가자 모집

"용산기지 주변 함께 걸어요!"서울의 한 가운데, 우리가 116년간 들어갈 수 없었던 용산미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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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알게 된 용산 워킹투어

테마별로 일정 코스를 돌며 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가이드 투어 무료)

 

여의도 면적의 용산 미군기지가 이전해가면서 부지가 반환되고 그 자리에 용산공원이 조성될 예정인데 기지와 주변의 관계와 그 가운데 깃들어있는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8개 코스로 용산 워킹투어를 기획했다고 한다.

 

한일 의정서에 근거해 일제는 용산에 300만 평을 강제 수용하려고 했지만 기존 거주민들의 저항으로 118만 평을 수용해 이 곳을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기지 역할로 이용했고 해방 후에는 미군 기지로 변화하였다.

 

오늘 참여한 코스는 "일제 흔적의 길"

총 3.85km로 녹사평역 B1 '녹사평 용산공원 플랫폼'에 모여 아래의 코스를 함께 돈다.

녹사평역 ~일본군 사격장 터~가마쿠라 보육원~옛 미츠비시 경성 합숙소~옛 조선총독부 관사~옛 조선신궁

 

녹사평역에 처음 가봤는데 용산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오늘 약속 장소 "녹사평 용산공원 플랫폼"

 

10분 전 미리 도착하니 가이드북과 지도를 나눠주고 열도 재주시고 손 소독하라고 소독제도 짜주셨다.

 

 

 

 

다른 일행을 기다리며 워킹투어 라이브 애니메이션? 노란색 발판을 밟았더니 모형이 신나게 돈다.

 

 

 

 

오늘 걸어갈 코스를 표시해봤다.

 

 

 

 

해방 직후 서울의 모습이 신기하다.

 

 

 

 

앞으로 조성될 용산공원에 대한 이야기인 듯

이 길을 따라 쭉 걸어 녹사평역 2번 출구로 나갔다.

 

 

 

출구에 발이 닿자 눈부시게 즐비한 은행나무와 물결처럼 흩날리는 노란 잎들이 가을향을 내뿜었다.

 

 

 

가을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은행나무 길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지하도를 거쳐 경리단길로 올라갔다.

 

 

 

경리단길 : 국군 재정관리단 정문~ 그랜드 하얏트 호텔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과 주변 골목길

과거 육군 중앙경리단이 현 위치에 있어 경리단길로 불리어왔다.

 

뉴스에서 보던 핫플 경리단길 입성

 

 

 

 

건물이 노랑 파랑 핑크 개성을 뽐낸다..

 

 

 

 

쭉 걸어 올라가니 명화의 거리가 나온다. 여러 명화들을 벽화로 옮겨 담은 거 같다.

 

 

 

 

이곳에 멈춰서 설명을 들었다.

 

옛 일본군 사격장 터
명화의 거리 건너편이 사격장 터인데 지금은 민간아파트가 지어져 있다. 미군도 일제시대 면적보다 더 크게 조성하여 사격장터로 사용하다가 1964년에 군인아파트로 조성하였다. 이 건너편이 원래 이태원 마을이었는데 일제의 강제 수용으로 기존 거주민들은 황학동으로 이주했다. 이태원은 원래 공무 여행자의 숙박시설로 영남로로 향하는 첫 번째 원으로 그 터는 용산기지 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걸어가다 특이한 건물을 봤는데 특별히 의미는 없다고..

 

 

 

육교를 오르니 남산타워가 가까워졌다.

 

 

 

이 곳은 어디일까?

 

 

 

 

해방촌
이 곳은 본래 사람이 살지 않던 숲이었으나 해방 이후 1946년 토지 몰수에 반발해 월남한 북한 주민들과 돌아온 해외 동포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기 시작했다.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이 해방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산비탈을 깎아 자리한 무질서한 판자촌들에 대한 묘사를 볼 수 있다. 미군 기지에서 종이박스나 양철들을 구해와서 무허가 판자촌을 지었는데 일본어로 하꼬라는 상자로 지었다고 해서 판잣집을 하꼬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90년대에 이르러서 지금과 같은 주택 밀집지역이 되어 지금도 독특한 풍경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꼭대기에 보이는 교회까지 걸어갈 예정이다!

 

 

 

 

 

 

 

남산터널 위 도로도 걷고 오르막길 내리막길 조그만 독립서점과 사진관

골목골목 느껴지는 옛 정취

 

 

 

 

구경하며 걷다 보니 금세 도착한 해방 예배당

당시 힘들게 살던 해방촌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교회와 기독교 학교, 시설들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당시 이 교회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다고 한다.

 

원래 일정엔 없었지만 신흥시장에서 자유시간이 10분 정도 주어졌다.

 

 

백종원의 골목식당도 촬영했었구나

 

 

해방촌 신흥시장
1960년대 후반~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며 제품의 생산+판매+주거가 함께 이루어지던 곳, 고향 음식을 그리워하는 이주민들의 이북식 국수 등 먹거리와 생필품 판매, 스웨터 등 가내 수공업을 했고 1970년대에 이 일대에 인구가 2만 8천 명이었다고 한다! 2017년 도시재생사업으로 예술가와 젊은 주민들을 유입시켜 공방과 카페 등이 들어섰다. 용산공원 사용설명서 中

 

 

 

분위기가 되게 독특하다. 70년대 드라마 세트장에 온 기분이 든다.

 

 

 

한 바퀴 둘러보고 오르막길 오르느라 마른 목을 축이러 카페에 들렀다.

 

 

 

 

들어가 보니 사장님이 외국인이다. 글로 보아 러시아 분인 거 같은데 한국말 되게 잘하신다. 어떻게 여기서 카페를 하고 계시는 건지.. 2층에 자리가 있는 거 같다. 시간 있었으면 앉아서 케이크도 사 먹어봤을 듯

테이크 아웃하면 가격도 천 원 빼주셔서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3,000원이다!

 

 

 

사진으로 찍고 보니까 예쁘다 ㅎ

 

 

 

 

커피를 마시면 원두에 따라 쓰든 시든 고소 하든 무슨 맛이 느껴지지 않나..

아무 맛이 안 느껴져 이런 원두도 있는 건가..

어쨌든 마른 목은 축였다..

 

 

 

 

한참 걸어내려가니 전망 좋은 곳이 나온다.

 

경성 호국신사 일대 터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용산은 후방기지 역할을 하였다. 총동원령을 내려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던 일제는 1940년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을 짓는다며 헌금을 걷어 이만여 평의 공간에 경성 호국신사를 지었고(아까 보고 온 해방교회 보성학교 일대까지 전부 포함) 해방 이후 판자촌이 조성되며 사라졌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폐가. 옛날엔 대부분이었을 판잣집 모습을 볼 수 있다고

 

 

 

길 종류도 많다. 녹색골목길이며 다문화 흔적 길이며

 

 

 

 

녹사평 역에서 보고 온 사진이다. 아까 설명 들은 경성 호국신사 진입로구나..

옛날에 잘 먹지도 못했을 텐데 이고 지고 돈까지 내고 얼마나 고생해서 만들었을까..

 

 

 

후암동 108계단

2018년에 경사형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이동할 수 있게 공사했구나

 

 

 

 

108계단을 내려와 걸으니 또 오르막길

 

 

 

 

기생충 촬영지. 도닥 다리? (송강호 가족이 비 맞으며 내려가던 장소라 고함)

 

 

 

 

요 근처에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다는데 지금은 다 덮어서 없다고

 

 

 

 

이곳은? 간판만으로도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옛 가마쿠라 보육원
이 곳은 후암로 동쪽에서 유일하게 한인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1913년 보육원을 설립해 한국 근대식 고아원의 시초가 되었다. 해방 이후 서울 영락교회 재단이 인수하여 영락보린원이 됨. 1921년에 소다 전도사가 원장으로 부임해 왔는데 그는 젊은 시절 방탕하던 중 조선인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하였던 적이 있었고 이 곳에 와서 조선의 고아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고 한다. 해방 직전까지 천여 명의 고아를 거두었고 조선 독립을 후원하기도 했고 해방 후에는 일본으로 가서 사죄를 해야 한다고 활동하다 95세에 돌아와 이 곳에서 1년 정도를 지내고 1962년에 사망하였는데 그의 활동을 기리며 사회장을 지내고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옛 미츠비시 경성 합숙소
일본인들은 주거지로 구릉지를 선호했는데 그래서 후암동 일대에 많이 자리 잡았다. 1930년대~1940년대 초 신세이 다이 주택지를 조성하며 함께 지어진 2층 목조 건물로 1990년에 현 오피스텔이 건축되며 철거됨 (이 건물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일제식 건물) 당시 중일전쟁으로 자원이 부족하던 시기라 값싼 자재로 지어졌었다.

 

 

 

오르막길도 많고 은행나무도 많다.

 

 

 

 

마지막 목적지를 위해 남산공원을 올랐다. 바로 옆에는 후암초등학교가 있었는데 풍광이 좋았다.

 

 

 

 

엘리베이터 타기 전 앞 건물. 이 일대가 옛 조선총독부 관사 터라고! 그냥 다니면 전혀 몰랐을 이야기다.

 

 

 

남산도서관을 거쳐 남산 공원 안으로 진입하였다.

 

 

 

 

마지막 목적지 도착

조선신궁 배전터
1925년 조선신궁이 광화문에서 총독부와 일직선으로 건립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정신적 지주&조선인들의 사상을 지배하기 위해 지은 곳이다.  남대문 사거리~ 남산 오르는 길(현 소월로)이 이때 신궁 참배용으로 만들어졌고 하얏트 호텔로 이어지는 남산 순환도로도 이를 위해 만들어졌다. 이 앞으로 참배길이 있었고 여기에서 참배를 하도록 강요했다. 해방 이후 두고 가면 훼손될 터이니 본인들이 하늘로 올려 보낸다는 의식을 하고 신궁도 해체하고 갔다고 한다.(지금 자리는 일반인들이 왔던 곳) 이승만 대통령 동상이 있다가 분수대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던 한양 도성 유적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개관하려 공사 중이다.

 

해설사님의 알찬 설명이 여기서 끝나고 인사를 하며 투어를 마무리했다.

 

 

 

지하철 타러 명동 쪽으로 걸어가다 본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회현 시민아파트)

 

 

 

힐튼호텔

 

 

크리스마스 준비로 옷을 갈아입은 신세계백화점

 

 

주말이라 사람들도 꽤 많고 벌써 호떡집에 줄이 길었다. 

명동 한 바퀴 둘러보고 회현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가방을 정리하는데 들어있던 나뭇잎

 

 

하루종일 만오천보를 걸었다.

볕 좋은 가을의 끝에 좋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 즐거운 주말을 보냈다.

혼자 걸었으면 아무 생각없이 보고 왔을 장소인데 이런 투어를 통해 용산의 역사를 알게 돼서 너무 재밌고 유익했다. 평면적이던 장소들이 입체적으로 느껴지게 된 시간. 말로만 듣던 해방촌이 왜 해방촌인지.. 신사참배를 했던 장소가 어딘지 당시에 어떤 방식으로 조선인들을 통제하고 이용했는지 조선의 고아들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친 일본인이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주신 해설사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