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당일치기

개와 늑대의 시간 속 난지 한강 공원

물결이 2020. 8. 7. 19:50
해 질 녘,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 -  heure entre chien et loup

 

유난히 날도 좋고 기분도 좋던 날

그냥 퇴근하기 너무 아쉬워 일 마치기 30분 전 급 결정한 한강행

시원한 바람도 쐬고 싶고

파란 하늘도 보고 싶고

해 질 녘 붉은 노을까지 보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반포 한강공원을 생각했는데 칼퇴하고 간다고 해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려 해가 져버릴 거 같아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위치상 가깝게 생각되는 망원역 부근 한강공원으로 방향을 정했다.

 

망원역에서 내려 급하게 걸어 도착한 한강 공원

 

 

역에서 생각보다 멀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 바쁘다.

선선한 바람에 날리는 치맛자락을 붙잡고 비탈길에 잠시 걸터앉아 성산대교 건너 지는 해를 보며 숨을 골랐다.

 

 

약간은 아쉬운 풍경

해가 너무 멀리서 지고 있어 노을이 져도 감흥이 안 올 풍경에 해 가까이 가보고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딘지도 모르고 해만 보며 무작정 걷기 시작

한강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진즉 다 진 줄 알았던 장미 발견!

제법 풍성한 장미 다발이 몸을 흔들며 자태를 뽐낸다.

 

 

걷는 동안 해가 점점 지는 게 보니 마음이 급해진다.

곧게 나있는 자전거 도로를 보자니 자전거를 빌릴걸 싶어 아쉬웠다.

 

 

구름 뭉치 속에서 용케 자태를 드러내는 중

 

 

멋스럽게 하늘로 뻗은 키다리 나무들 사이사이 보이는 구름이 마치 붉은 바다를 유영하는 듯하다.

멀리 보이는 금빛 하늘과 나무 주변의 연파랑 하늘빛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풍경에 감탄하며 걸었다.

근데 언제 까지 걸어야 하는 거지..

 

 

걷고 또 걷고..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 무렵에 겨우 도착한 난지 한강공원.

헥헥...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난지도로 바로 오는 건데..라며 잠깐 스친 후회.

날이 어두워지자 산책객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어스름은 짙어지고 하늘은 붉어지고

초록빛 나무는 까맣게 물든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다가왔다.

 

 

주변이 모두 붉게 물들고 눈앞에 다가오는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

 

 

한강변 노을을 보기 전 해가 완전히 저버릴까 급한 마음에 걸음이 빨라졌다.

 

가양대교를 물들이는 신비로움

 

급하게 옮기던 발길을 잡는 오솔길이 눈에 들어오고 빠르게 걸어 강 가까이 내려가

드디어 만난 온 하늘이 붉게 타는 순간

고요한 가운데 펼쳐진 눈부신 장관만 오롯이 눈에 담는다.

 

당시의 감동을 사진으론 다 담을 수가 없어 아쉬울 뿐

 

 

나는 노을이 물드는 하늘을 좋아한다.

푸른 하늘도 좋고 시원하고 높은 하늘도 좋지만

붉은빛으로 가득한 노을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깊숙한 곳에서 평화로움이 몰려온다.

산뜻한 바람까지 스쳐 지나가 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를 꿈을 꾸던 장자처럼 물아일체라도 된 걸까

머릿속 가득하던 잡념도 잊고 세상 부러울 것도 없고 그저 멋진 하늘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짧은 황혼은 아쉬움을 남기고 까맣던 가양대교에 노을빛 LED 등이 하나 둘 켜진다.

한참을 멍하니 서있던 나도 해가 완전히 지기 전 돌아가고자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뗀다.

 

 

 

망원역에서 출발해 월드컵 경기장역에서 끝난 산책( 한 달 이내에 이렇게 많이 걸었던 적이 없다.)

 

난지 한강공원 강추!

관리가 잘 된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어도 좋고 노을을 보기에도 좋고

사람도 많지 않아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도 좋다..(다음에는 바로 난지도로 가야지..)

 

 

야경까지 멋진 한강

 

퇴근길 나들이 성공. 괜히 뿌듯하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서울 곳곳에 발도장을 찍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