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재테크의 첫걸음 '독서'

일본 주식시장의 신 고레카와 긴조

물결이 2021. 6. 23. 22:29

일본 주식 투자계의 전설 '고레카와 긴조'의 자서전을 읽었다.

 

역자가 밝히는 그의 투자원칙
1. 수면 하의 우량한 것을 골라 지긋하게 기다림
2. 경제, 시세 동향 스스로 공부
3. 수중의 자금 안에서 행동(거북이 삼 원칙)
4. 남의 추천이 아닌 내가 공부하고 판단해서 투자
5. 2년 후 경제 예측
6. 탐욕 금지
7. 주가는 최종적으로 실적으로 결정됨
8. 리스크 대비

 

 

1992년에 편찬한 책으로 벌써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책이지만 진리는 시대와 국경을 관통하는 법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싶다고 대박을 칠 수 있을 거라 착각하고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투자를 하다가 파산당할까 봐 자서전을 쓴다고. 주식으로 성공하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굴곡이 심한 인생을 살아온 선배의 이제 막 걸음을 떼는 후배들을 위한 걱정 어린 충고일까

고레카와 긴조는 전국 각지에서 스승님이 되어달라고 사람들이 몰려와 경제 연구소까지 만들고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대학 강의까지 부탁받았으며 주식 승부로 일본 전체 소득세 1위를 차지한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모험심과 대담함을 가지고 독하게 살아왔다. 무일푼으로 산둥반도를 횡단하고 청도에서 일리 전 장사를 할 당시 해낸 권총 협상은 그가 얼마나 담력이 센 인물인지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기 힘든 일들을 어린 시절에 이미 여러 번이나 겪은 것이다.

 

1928년 26살의 나이에 간토 대지진이 일어나자 도쿄도 전멸 상태일 거라는 판단 후 아연철판을 전부 매수한 그의 비상한 예지력과 실행력.. 평소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면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대공황의 여파로 예금한 은행은 도산하고 대출받은 은행은 살아남으며 회사가 도산하고 무일푼이 되었을 때 그는 자본주의가 이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가난 속에서도 매일 같이 도서관을 출석하며 필사적으로 해낸 3년간의 경제 공부.. 정말 존경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는 이 지난한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변동에는 시대를 넘어선 원리적인 하나의 일정한 큰 리듬이 있었고 그가 말려든 금융패닉도 이 경제 변동의 하나인 파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 후 자본주의는 붕괴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고레카와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고생하며 3년간 공부 후 얻은 깨달음을 그의 자서전 한 페이지만 읽고도 공유할 수 있다니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경제에는 영원한 번영도 없으며, 영원한 쇠퇴도 없다’ - 자본주의 경제의 본질

 

자본주의 파악을 끝낸 그는 물가의 변동과 주가의 변동에 일정한 법칙적인 것이 있는 것을 발견한 후 주식으로 승부를 볼 것을 결심한다. 아이 넷 딸린 가장이 3년간 수입도 없이 아내만 고생시키더니 이제 주식을 할 거니까 돈을 융통해오라고 아내에게 시키다니 요즘 같으면 벌써 맨몸으로 쫓겨났을 거다.

 

하지만 그를 믿어준 아내는 70엔을 빌려왔고 이것으로 고레카와는 34세에 주식 승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주식을 시작한 연말에 원금의 100배인 7,000엔으로 불리는 데 성공한다. 와.. 전국에 주식 고수로 소문이 날만 하지 않나.

 

여기서 더 나아가 영국의 금본위제 폐지는 물론 미국이 금본위제를 중단할 것도 수일 전 판단해 적중시켰다. 이때 그는 현금 확보 후 주식이 폭락할 것을 기다렸으나 경제 혼란을 우려한 정부에서 미국이 금본위제를 중단하기 전의 종가로 결제하기로 결정했고 기회를 놓쳤다고 저술하고 있다. 이번에도 외부 변수가 개입한 것이다. 

 

40대에는 한국에서 철강사업을 하던 그는 종전으로 1946년 1월 빈털터리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것 또한 그가 어찌할 수 없는 변수였다. 그는 일본에서 이모작을 실천하다 1960년 22년 만에 주식시장에 컴백하게 된다. 

 

거북이 삼 원칙으로 주식 매매를 개시하다.  ‘주식 투자는 마치 토끼와 거북이와 같다’

 

 

그가 컴백한 전후의 주식시장은 기업과 일반 대중이 등장하였고 3회에 걸쳐 커다란 주식 붐을 경험하고 있었다. 

1960년 이케다 내각은 ‘국민소득 배증 계획’으로 민간 설비투자를 확대하였고 급격한 인플레를 예상한 후 땅값은 반드시 폭등한다는 생각으로 토지 구입을 성공해 3억 엔을 확보 이를 주식에 투자해 6억 엔으로 불린 후에 한 종목으로 승부를 볼 것을 결심하였다. 역시 넓은 식견으로 미래를 예측한 그의 예지력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1973년 토지투기, 인플레이션, 원유 급등으로 경제혼란이  계속되자 정부는 인플레 진정을 위해 공공사업 중심으로 수요 억제하였고 시멘트 업계의 수요 급격 감소하자 공장이 폐업하거나 축소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승부를 띄운다.  ‘상승할 만한 주식을 수면 하에서 산다’ 

 

넝마 주였던 일본 시멘트를 매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3년 1월 323엔 고가였는데 1976년 4월 적자 120엔 전후 횡보 거래량도 10만 주 전후로 적음 과거 10년 분석하니 저가라는 판단이 들었고 ‘정부가 실업자 대책을 위해 조급히 경기 부양에 나설 것이다’라는 빠른 선택을 하였다.

 

“벌써는 아직, 아직은 벌써, 매도는 신속하게 매수는 유연하게” 

 

 상승하고 있는 주식을 산 세력이 ‘아직 오른다’라고 생각할 때는 ‘ 더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사들인 ‘일본 시멘트’ 주도 이제 ‘아직’을 넘어 드디어 ‘벌써’ 에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비밀리에 주식을 처분하기 시작했다.(p256)

절도를 잊고, 과욕하면 참패하는 것은 필연이다.(p259)
 - 누구나 알고 있지만 승부사였던 그도 어느 순간엔 탐욕에 눈이 멀어 지키지 못했던 철칙
 - 실제로 일본 시멘트 주식은 그 후 반년도 가지 않아 200엔 대에서 더욱 계속 하락, 급락했다. 다행히 그는 이번 투자에서는 철저하게 이론을 지켜 승부에 성공하였다.

 

두 번째 승부, 도와 광업 : 과욕으로 자멸” 

 

그는 청도에서 일리 전을 주괴로 주조해 판매한 경험과 한국에서 철산 광산을 개발해 사업한 경험으로 광산에 관심이 많았다. 구리 가격이 3년 넘게 폭락하자 언젠가 반드시 회복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1978년부터 도와 광업 매수를 120엔부터 시작한다. 당시 그의 목표는 500엔에 도달하면 70%를 처분하는 것이었다. 

 예상은 적중했지만 주가가 더 오르는 것을 보자 눈이 뒤집히고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되었고 그만 매도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것을 모르면 해를 입는다.” 참으로 시세란 살아있는 것,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p269)
‘아직 아직’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자신의 욕망이 말하는 것으로 현실은 ‘벌써’인 것이다.
매도에 가장 필요한 냉정함마저 잃어버렸다. (p274)
시세는 참으로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 극복하기 어려운 요물인 것이다

 

그렇게 시세로 공부를 많이 한 전문가도 욕심으로 과오를 저지른다. 천장을 뚫을 듯하던 기세를 꺾은 건 이번에도 외부 요인이다. 

 

은 가격 급락 → 세계 최대의 은 투자가인 헌트 일족 자금난 → 본인 소유 은 자산을 담보로 20억 달러의 채권을 외국에서 발행한다는 계획 발표 → 뉴욕 주식시장, 은 시장 은이 일제히 매도됨 → 대폭락 →  일본 시장 비철금속 시세 일제히 무너짐  → 2월 7일 900엔을 친 ‘도와 광업’ 주식은 불과 3개월 후에는 300엔 대까지 대폭락

 

매도하지 못하고 저장만 했던 수익은 결국 ‘일장춘몽’의 환상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세 번째 승부, 스미토모 금속광산 : 짜릿한 역전승” 

 

청소년을 위한 고레카와 장학재단을 설립 후 조용히 살던 그는 신문 기사를 읽던 일생일대의 기회를 발견하게 된다.

 

1981년 9월 18일 히시카리 금산에서 고품질 금광맥이 발견되었는 내용이었는데 700m 거리의 두 개의 굴착지점의 금맥이 이어졌을 거라 판단에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고 확신을 가진 그는 발행주식을 모아가기 시작했다.  230엔-240엔 사이에 16%를 모았을 때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뉴스에 나자 주가는 점점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가 평소 광산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고 운영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기회로 역시 미리 준비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첫발을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첫발을 내딛는 때가 나쁘면 결국 일을 그르친다.”

 

몇 년에 한 번 있을 절호의 찬스를 잡고 매수에 성공해도, 매도의 타이밍을 놓치면 원금도 이익도 없다. 매도가 매수보다 어려운 것은 상승한도를 알지 못하고 인기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매도야말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몰래 보이지 않는 파동 속에서 처분하는 것이 비결이다.(p331)

 

이번엔 목표가 였던 1,000엔대를 돌파 하자 탐욕을 부리지 않고 약속대로 매도하였다.

 

사람에게는 일생 중 두 번이나 세 번의 찬스가 있다. 그것을 살리는가 죽이는가의 판단을 위해 일상의 노력과 정진, 그리고 진실한 이론과 실천 등을 통하여 매일 사고의 훈련을 반복하는 것이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진검승부를 경험하고 승부 감을 키워가는 것이다. 결국 감이란 경험의 축적으로부터 솟아 나오는 진실한 종합판단인 것이다(p334)

 

 

(생각정리) 어느 시대에도 어느 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는 공통 원칙

 

 

1. 잘 아는 분야를 파라

 고레카와는 아연, 구리 같은 비철금속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 공부를 많이 한 전문 관심 분야인 것이다. 젊은 시절 철강 사업, 금광 사업, 아연 사업 등을 두루 거쳤고 성실하고 끈기 있는 그의 성격대로 그 과정에서 모든 지식을 축적하여 그것을 주식 시장에서 종목 선택에 십분 활용한 것이다. 나도 내가 일상에서 관심을 가지고 그나마 좀 아는 분야를 꾸준히 공부하자.

 

2. 매일 주가 지수, 금 은 구리 등 비철금속과 재고, 입출고 상황, 외환시세, 금리 등을 기록하고 공부함

 고레카와는 매일 같은 기록을 통해 금본위제 폐지, 2차 세계대전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미리 예견하고 준비하였다. 90세가 넘었을 때도 습관이 되어 항상 공부했다고 하니 그의 승부사에 더 빛이 난다. 

 나도 매일 간단하게라도 시황을 체크하고 주요 뉴스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3. 외부 변수를 고려하자. (경제대공황, 정부의 결정 등 시대의 흐름)

비상한 예지력과 끈기를 가지고 있는 그도 자본주의의 파동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몇 번이나 사업이 도산한 거다. 청도에서 그랬고 한국에서도 그랬다. 광산사업도 철강 사업도 아연 사업도 그가 손쓸 수 없는 거대한 자본주의의  파동에 휩쓸려 무일푼이 되어버렸다. 끝없이 세계 경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4. 과욕을 부리지 말자

어떠한 하락장에도 반드시 바닥이 있고, 하락폭이 큰 만큼 상승의 반동도 크다는 것은 주식시장의 철칙이다, 누구든 실력 이상의 것을 취급하면 혼란에 빠지고 불안 심리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것이 실패로 연결된다.(p26) 

 주식을 매수해놓고 불안하지 않도록 적당히 하자. 확신이 있으면 버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잃을 수밖에 없다.

 

 

5. 종목은 수면 하의 우량주를

 증권회사와 신문, 잡지에 대문짝만 하게 난 재료에 현혹되지 말 것. 종목은 내가 스스로 발굴하는 것이다!

 

너무 유익하게 읽었다. 고레카와가 몸소 겪어낸 인생의 교훈을 이렇게 편하게 배워도 되는건가 미안할 정도이다. 이를 보답하는 것은 말귀를 잘 알아듣고 실천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