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사이

비오는 날 떠올리는 기억의 조각

물결이 2020. 8. 5. 20:22

며칠째 비다. 오늘도 어제도. 일기예보에는 앞으로 열흘은 거뜬히 더 비가 내리리라 우산 표시가 가득하다. 

퇴근 후 의자에 기대앉아 살짝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는다.

내리는 비를 맞는 기분은 썩 좋지 않지만

내리는 비를 듣는 기분은 꽤나 낭만적이다.

 

차분한 음악과 따뜻한 커피까지 한 잔 곁들이면 혼자만의 생각에 몇 시간이고 빠져든다.

 

그러다 보면 두서없는 생각은 상상의 미래를 헤매기도 하고 다른 기억으로 뒤덮인 추억을 뒤적거려 새삼스레 꺼내어보기도 한다.

 

어린 시절 살던 집은 환경이 열악하여 지금처럼 비가 내리는 날은 온 가족 비상이 걸렸다.

부산스러운 엄마 아빠의 모습에 뭣도 모르고 고개만 갸우뚱거리던 꼬맹이였던 나

 

새까만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비가 쏟아지려는 기미가 보이면, 아버지는 종아리를 덮는 고무장화에 노란 우비를 걸치고 논에 물길을 내러 서둘러 내려가셨다. 우리 집의 주요 생계 수단이었던 벼농사를 망치지 않기 위해 삽을 들고 걸음을 재촉하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지금도 환한 노란빛으로 기억된다.

같은 시각 엄마는 바쁘게 차단기를 내리고 집안에 모든 플러그를 뽑았는데 특히나 전화기는 뽑은 줄을 돌돌 말아 서랍 깊숙이 숨겨놓으셨다. 

 

높은 지대에 덩그러니 홀로 지어진 우리 집은 폭우가 내리는 날이면 심심치 않게 집안으로 벼락이 치곤 했고 행여나 깜빡하면 전화기에 벼락이 떨어져 못쓰게 되기 일쑤였다.

차단기도 손으로 만지다 전기구이가 될까 내리고 올리는 전용 장대가 따로 있었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도 우리 집에서는 흔히 만날 수 있었다.

마당 앞에 일렬로 족하니 심어 놓은 대추나무들이 키 작은 깻잎과 열 맞춰 사정없이 흔들리던 밤

 

어린 우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부모님의 뒤꽁무니만 좇기 바빴는데 유독 심한 날은 다 같이 한 방에 모여 이불속에 숨어 비가 그치기만 기다려야 했다.

 

그럼 이불 안으로도 불빛이 번쩍번쩍 들어오던 게 생생하다.

 

밤새 내리는 비가 도저히 감당이 안될 때도 있었다. 그러면 염치 무릅쓰고 우리가 복숭아 집이라고 부르던 마을 어르신 댁으로 가족 전체가 피신했다. 하우스 모양 철골 위에 보온재를 덮어 집이라고도 부르기도 초라하던 우리 집에 비하면 슬레이트 지붕에 주황색 페인트까지 칠해져 안팎으로 어엿한 집 모양을 갖추어 부럽던 복숭아 집. 그럴 때면 그곳에 사시던 노부부 내외는 당연스러운 것처럼 우리를 맞아주셨다. 

 

우리도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오늘 갈 수도 있다며 코드를 뽑기 전 미리 전화해두는걸 당연스레 여기기도 했다. 

그 시절 이웃의 정이었을까. 외딴집에서 맨몸으로 고생하는 젊은 부부에 대한 동정이었을까. 

 

생각 없던 꼬맹이는 무섭다고 울기만 했지 어린 자식들을 책임져야 했던 부모님의 무거운 어깨는 알지 못했다. 자식들 질척이는 땅 밟지 말라고 등 뒤에 업어 오른손으론 커다란 우산을 들고 왼손으로는 딸내미 매달려 있기 힘들까 엉덩이 받치고 내딛던 걸음과 꼭 잡아라 당부하던 목소리. 나도 혹여나 떨어질까 꼭 붙잡고 등에 매달려 가던 밤

나보고 지금 그렇게 살라면 하루도 못 살 거 같은데 엄마 아빠는 왜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을까. 

 

그때의 부모님을 지금 만날 수 있다면 왜 이렇게 미련하게 사냐고 무엇 때문에 이리 고생하냐고 화를 낼 거 같은데..

자식이 그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까. 정말 만난다면 말없이 꼭 안아드리고 싶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마음에 가득 담아.

 

지금은 가끔 비 오는 날 모여 얘기하는 추억이 돼버린 그런 날들..

 

비 내리는 밤 문득 젊었던 부모님의 시절을 그린다.